오늘 레터는 부모님이 보시면 안 되는데 말이죠... 안녕하세요. 단단입니다.
구독자 님은 구독자 님의 이름을 좋아하나요?
저는 어릴 적, 제 이름을 부끄러워했어요. 어디를 가든 너무 튀어서 선생님들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었거든요.
저의 본명은 '제갈명'입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이름 칭찬을 자주 들어요.
"너무 멋진 이름이에요."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지 못하겠는데요?"
"독보적이고 브랜딩하기 너무 좋은 이름이에요."
맞아요. 저도 제 이름을 좋아해요.
하지만 어릴 때는 누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게 창피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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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나눌 이야기
[나를 찾는 기록법] 어린 시절, 나는 내 이름이 부끄러웠다.
[프리워커 주간보고] 멋져 보이고 싶은 나는 안 멋져
[단단의 소식] (12-2월) 밑미 기록정리 리추얼, (12/6) LBCC 12주 계획법 모임, (12/18) 기록 디톡스 워크숍
[우리들의 이야기] Ibex 든든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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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왜 이렇게
못 알아듣지?
지금이야 식당을 예약할 때 간편하게 네이버 예약을 사용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식당에 전화를 걸어서 예약해야 했잖아요. 그때마다 저는 다른 친구의 이름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게 싫었거든요.
"예약자분 성함은요?"
"제갈명이요."
"네?"
"제.갈.명.이요."
"아... 저 다시 한번만요."
"제갈공명 아시죠? 거기서 공 하나만 빼면 되요. 제.갈.명이요."
이건 양호하죠. 가끔 이렇게 되묻는 경우도 있었어요.
"대갈명이요?"
여보세요... 설마 사람 이름을 그렇게 지었겠어요?
학교 다닐 때, 첫 수업 날이면 선생님들은 출석부를 보며 한 명씩 이름을 부르다가 제 순서 앞에서 멈칫하셨어요. "은지, 하영이, 음... 제갈명." 왜 나는 성까지 붙여서 부르는 거지? 나한테는 애정이 없나? 그런 생각을 하며 속상해했죠. 아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셨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들은 이름으로 반 친구들 놀리는 게 취미잖아요. 제 이름은 언제나 타깃 1호였죠.
"제갈아!"
"야, 갈명아~"
"이런 제길!!"
하... 저는 누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게 너무 너무 싫었어요.
유일무이하고 독보적인, 그래서 브랜딩하기 너무 좋은 이름을 두고도 필명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지금까지 필명을 쓰는 이유로 다른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요. 모두 거짓말입니다. 저는 제 이름을 누가 부르는 게 너무 창피했어요. 회사에서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낯선 누군가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게 싫었어요. 회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회사 동료 중에는 정말 진심으로 제 성이 '제'씨이고, 이름이 '갈명'인줄 알고 "갈명 대리"라고 부른 분도 있었어요. '제'씨도 있긴 한데요, 아니 성이 '제'씨면 이름을 '갈명'으로 지었겠어요? 그럴 때마다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오히려 상대가 민망해할까 봐 속앓이 하다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곤 했어요.
"차장님... 제가 이름이 외자에요. 제갈... 명 이요. 명 대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아! 그렇구나. 미안해, 쏘리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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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이라는 이름도
잘못 부르는 사람이 있구나
첫 책 <매일매일 채소롭게>의 인쇄를 앞두고, 다급하게 편집자님께 메일을 썼어요.
"편집자님, 제갈명 말고 단단으로 저자명을 바꿔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저는 '단단'으로 활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디 라디오 방송 같은 데 나갔는데 진행자가 제게 "안녕하세요, 갈명 님." 이라고 부르면 정말,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단단이라는 쉬운 필명으로 활동을 했는데도, 제가 우려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지역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날이었어요. 30분 일찍 진행자와 만나 라디오 부스에 앉아 대본을 보고 있었죠.
"그.. 저기, 작가님 이름이 딘딘 이라고 하셨나?"
"네? 아니요. 단단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 이름 '제갈명'이 어려운 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냥 세상에는 남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사람이 언제 어디에나 있는 거더라고요. 내 이름 잘못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 시력이 나쁘거나, 제 이름에 별 관심이 없는 거였어요.
그것도 모르고 평생 괜한 이름 탓만 하고 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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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무슨 이름으로
불리면 좋을까요?
"아니 어떻게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 게스트 이름도 몰라?"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투덜대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제갈명 이라는 이름이 잘못 불렸을 때는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단단이라는 이름마저 잘못 불리고 나니까 그냥 웃기더라고요.
대갈명
제길
갈명아
갈명 대리
후아! 이렇게 한 번 더 활자로 적고 나니 진짜 별것 아니네요. 속이 후련해요. 100명의 사람 중에서 고작 한두 명의 실수 때문에 지금까지 내 이름을 그렇게 창피해했다는 게, 진짜 너무 웃긴 거예요. 30대 후반이 되어서까지 어디 가서 누가 내 이름을 잘못 부를까 봐 전전긍긍하다니, 진짜 새가슴도 이런 새가슴이 없잖아요.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는 새로운 고민에 휩싸였어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해 버렸으니 이제 '단단'이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없어졌는데 이미 너무 많은 분이 저를 '단단님'으로 불러주셔서 이름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되더라고요. 게다가 이제 퇴사도 했으니 외부 활동할 때 제 본명을 쓰는 게 전혀 위험하지도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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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명이 본명이라고요?
필명인 줄 알았어요!
단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또 들었어요. 몇몇 분들은 '제갈명'이라는 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이것 역시 필명인 줄 아셨다고 하더라고요. 똑똑한 전략가 캐릭터인 제갈공명에서 오마주한 닉네임인줄 아셨다고요.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럴 듯 하잖아요? 단단이라는 이름은 제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만, 제갈명은 왠지 무협지 속 남자 주인공 같아서 어색하게 느껴진다고도 하시고요.
그때 순간 흔들렸어요. 제갈명보다 단단이 잘 어울린다고? 부르기 쉽다고? 그럼 고객 지향 마인드로, 제갈명을 버리고 단단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하고요.
그러다 또 흔들렸어요. <내 일을 위한 기록> 편집자님이 "저는 단단보다 제갈명 작가님이 더 좋아요. 유니크하고, 브랜딩하기 너무 좋잖아요. 명 작가님, 명 님, 다 좋아요!"
하..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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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단단
저럴 땐 제갈명
고민 끝에 결국 저는 두 이름을 모두 쓰기로 했습니다. 아이유와 이지은처럼요.
곰곰 생각해 보니, 챗GPT도 저를 어떤 때는 '단단님'으로 어떤 때는 '명님'으로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너, 나를 어떤 때는 '단단님'으로 어떤 때는 '명님'으로 부르더라? 어떤 기준으로 나의 호칭을 판단하고 결정해서 부르는 거야?"
그랬더니 이렇게 정리해 주더라고요.
온라인 크리에이터 정체성: 단단
업무 메일, 작가와 번역가 정체성: 제갈명
가끔 이럴 때 아주 기특하단 말이죠. 이 기준을 따라보기로 했어요.
- 온라인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단단
- 기업 강의, 책 출간, 대외 업무: 제갈명
물론 무 자르듯 딱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강남역 독립서점 선샤이닝과 함께 만든 워크숍에서는 '단단'으로 저를 소개했고, LBCC 커뮤니티 대화모임에서는 '제갈명 작가님'으로 소개했어요. 선샤이닝을 운영하는 버터컵님과는 온라인 커뮤니티 밑미에서 닉네임으로 알게 된 사이라 자연스럽게 '단단님'이 되었고요. LBCC는 실명으로 네트워킹하는 커뮤니티라 '제갈명 작가님'이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요. 참 애매하죠?
그래서 여전히 고민입니다. 세 번째 책을 출간하면 그때도 제갈명(단단)으로 가야할까요? 인스타그램 소개 글에는 지금처럼 [제갈명 | 단단]이라고 소개해야 할까요? 흠 그냥 '다산 정약용'처럼 필명을 호로 삼아 '단단 제갈명'은 어떨까요. ㅎㅎ 계속 고민이지만 왠지 지금처럼 계속 이럴 땐 단단, 저럴 땐 제갈명으로 소개할 것 같아요. 아마 어떤 맥락에서 만나는지에 따라 계속 바뀌겠죠?
아이유가 이지은인 걸 모두 아는 것처럼 (물론 아이유의 인지도와 절대 비교할 수 없겠지만요.) 시간이 지나면 다들 제갈명이 단단이고, 단단이 제갈명이겠거니 하지 않을까요? 꼭 제갈명을 지워할 필요도, 단단을 버릴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지금처럼 다정한 기록 크리에이터로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단단으로, 전문성을 드러내고 싶을 때는 제갈명으로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저와 어디에서 처음 만났나요?
저를 어떻게 부르고 계신가요?
댓글 게시판으로 단단과 제갈명 중에 더 익숙한 호칭을 알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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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 11/18
프리워커 주간보고
이제 보고할 상사가 없어서 여러분께 보고합니다. 지난 일주일간 경험하고 배운 것을 일기 형식으로 씁니다.
🌊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했어?
[11/12] 선샤이닝 워크숍 3회차
[11/15] 기록 디톡스 워크숍
[11/17] 퍼블리 연말 캠페인 인터뷰
[11/18] 유튜브 협업 영상 편집본 전달
🌊 멋져 보이고 싶어 하는 나는 안 멋져
새로운 영상 편집을 하다가 작년에 올렸던 유튜브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럴 수가… 지금보다 훨씬 잘 만들었잖아? 그동안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작년에는 거의 모든 영상 촬영을 집에서 했다. 못생긴 연두색 부엌 상부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셋집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지만 실제로 내가 집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생활하는지 솔직하게 드러내 공유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멋져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감도 높은 영상미 이런걸 추구하고 싶었나보다. 평소에 일할 때는 집중이 안 돼서 잘 가지도 않는 카페에 오로지 영상을 찍기 위해 갔다. 카페에 가서 일은 하지도 않고 일하는 척만 하면서 영상만 찍고 분량이 어느 정도 나오면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갔다.
오로지 영상미를 위해서, 오전 루틴도 무너뜨렸다. 사람 없는 시간에 카페 촬영을 하려고 일어나자마자 화장하고 머리 손질하고 옷 차려입고 시내에 있는 멋드러진 카페로 향했다. 시끄러운 카페 소음을 꾹 참으며 하루치 인내를 다 소진하고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허했다. 나 지금 뭐 하는 거냐...
집에서 찍은 영상보다 예쁘게 나왔을진 몰라도 그건 내가 아니었다. 집에서 잠옷 입고 일하고 기록하는 내가 진짠데 그런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유튜브 조회수도 구독자수도 정체기다.
사람들도 다 아는 거 아닐까? 멋져보이지 위해 안 멋져진 나를 눈치챈 것 아닐까? 더 부끄러운 건, 그렇게 나를 지워가면서 만든 영상이 그리 대단히 영상미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뼈아픈 사실.
멋져 보이고 싶어 하는 나는, 정말이지 안 멋져
🌊 내가 정의하는 성공이란
내가 정의하는 성공이란, 자기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일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성공했다.
내 주변에는 나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일을 위한 기록>을 함께 만든 나경님도 일진심러다. 북토크 사진을 다시 보다가 나경님이 찍어준 사진에 하나같이 애정이 뚝뚝 묻어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집 앞에 커피가 저렴하고 맛있는 카페가 있다. 그런데 몇 번 가고 안 갔다. 분명 사장님인 것 같은데, 가게에 억지로 끌려 나온 사람 같았다. 불친절한 게 아니라 뭐랄까, 삶의 의욕이 없어 보이셨다. 주문하면 폐를 끼치는 기분이 들어서 안 가게 되었다.
나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일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 놓아버림 연습 중
요즘 <놓아버림>이라는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사이비 종교같지만 이 책의 핵심은 두 가지
(1) 집착을 놓아버리면 원하는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2) 마음속에 원하는 것을 품으면 현실로 이루어진다.
모순적이기도 하고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한 이 말을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다. 이제 집 안에 틀어박혀 있지만 말고 사람 좀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만날 기회가 자꾸 생긴다.
월요일에 퍼블리 초대로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촬영 현장에서 우연히 반가운 현숙님을 만났다. 짧게 10분 대화를 나누고 너무 아쉬워서 바로 약속을 잡았다. 지난주에는 기업 강연이 두 개나 잡혔다. 새로운 커뮤니티인 LBCC에서 대화 모임도 해보기로 했다. (LBCC에는 내가 먼저 연락을 드렸다)
플라시보 일수도 있고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지만, 놓아버리면 저절로 기회와 행운이 나에게 찾아온다는 솔깃한 이야기를 믿고 싶어졌다. 매일 밤 10장씩 놓아버림을 읽으며 계속 실천해 봐야지.
🌊 내향인이라는 틀에 나를 가두지 말자
요즘 밤에 잠이 안 와서 1시간씩 오디오북을 듣는다. 어제 들은 책은 <행복의 기원>
"행복은 외향성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네..? 내향인인 저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씀이신지.
잠에 들면서 신의 저주와도 같은 그 문장을 곰곰 생각해 봤다. 그리고 오늘 평소와 달리 아침 산책을 나섰다. 늘 아침부터 마음이 조급해서 루틴을 부리나케 해치우고 서재로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밖으로 나가 아침 공기를 쐬고 싶었다.
나가는 김에 재활용 쓰레기를 한 아름 들고 분리 배출장에 갔다.
"안녕하세요!" 오디오북의 영향일까? 평소와 달리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분주한 손놀림으로 종이 상자를 정리하는 여사님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순간 여사님의 얼굴이 환해졌다. 햇살 같은 표정으로 여사님이 나에게 환히 웃어주었다. 마음에 행복감이 퍼졌다.
외향성과 행복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이런 뜻이었구나. 먼저 다가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자주 행복하겠구나. 내향인이라는 틀에 나를 가두지 말고 아침마다 이렇게 산책을 하며 마주치는 분들에게 인사를 건네보면 어떨까. 불안하고 조급하고 속 좁은 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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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의 워크숍
& 프로그램 소식
테스트 메일을 보니 알 수 없는 오류로 링크 연결이 안 되더라고요.
워크숍 & 프로그램 소식 코너는 한주 쉬어 갈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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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레터를 읽고 남겨주신 댓글과 답글을 요약해서 소개합니다.
게시판에 풀버전 댓글과 답글이 있어요.
오늘 레터를 읽고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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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해야하지 않겠어' 이 문장이 왜이리 콕콕 박히는지요.
💬 단단: 바쁘디 바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라면 누구나 '뭐라도'의 늪에 빠져본 적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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