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고할 상사가 없어서 여러분께 보고합니다.
지난 일주일간 경험하고 배운 것을 일기 형식으로 씁니다.
🌊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했어?
[9/3] 1:1 코칭 OO님
[9/4] 도서검토서 결과물 납품
[9/5] 정신여자고등학교 기록 강연
[9/7] 메모어 2차 모임
[9/9] 선샤이닝 버터컵님 미팅
🌊 첫! 고등학생 기록 강연을 하다
친구가 근무하는 여고에서 기록 강연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십수 년이 지났더니 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한창 강의안을 기획하다가 거실에서 쉬고 있던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고등학생들은 공부하느라 휴대폰 못 쓰겠지?"
"무슨 소리야? 휴대폰 제일 많이 해."
"오빠, 고등학생들은 아직 SNS 안 하겠지?"
"무슨 소리야? 인플루언서 많을걸."
고등학생한테 기록 디톡스를 이야기하자니 일단 기록하는 습관부터 고민인 친구가 더 많을 것 같고. 키워드 찾기를 하자니 일단 대학부터 가야지 키워드는 뭔 소리? 할 것 같고.
고민 끝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주제인 [하루 10분 나를 돌아보는 기록]을 컨셉으로 잡았다. 일기, 취미 기록, 주간보고, 한달회고, 하루한줄 독립일지를 예시로 보여주면서
▪︎ 기록이란 무엇인지 개념부터 재정의하고
▪︎ 하루 10분 나는 나의 일상을 어떻게 편집할지 정하고
▪︎ 기록 캘린더를 만들며 짧게 같이 실습해 봤다
강의 시작 전 교사인 친구가 슬쩍 불러서 '아예 안 듣는 애들도 많을 거야. 실망하지 마.' 주의를 주길래 반응이 없을까 봐 겁이 났다. 다행히 강의를 시작하니 학생들이 너무 재밌게 들어줘서 마음이 놓였다. 강의를 마치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려는데, 반짝반짝 눈이 빛나는 아이들 몇 명이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오늘 팬 됐어요!"
"유튜브 구독 꼭 할게요!"
"저도 기록 좋아하거든요. 매일 소설 5줄 쓰기 해요!"
와.. 나 이제 고등학생 강연도 했다! 그것도 심지어 잘했다!!
지난주는 정말 죽음의 주간이었다. 갑자기 일복이 터져버린 것.
▪︎ 첫 번역서 도서 검토서(원서 한 권 읽고 쓰는 15페이지짜리 분석 자료) 작성
▪︎ 첫 고등학생 대상 기록 강의
▪︎ 1:1 코칭, SNS 콘텐츠 발행, 밑미 리추얼 운영 등 기존 업무는 당연히 하는 거고
타고난 체질 상 잠은 줄일 수 없기에 평소대로 8시간씩 자고 대신 눈을 뜨는 순간부터 침대에 눕기 전까지 1초도 놓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달렸다.
하지만 무리였다. 도서 검토서 작성 3일 차. 울고 싶었다. 퇴사하고 공방을 차린 어느 사장님이 새벽 3시까지 택배 포장하다가 여전히 산더미처럼 남은 택배 상자를 보고 엉엉 울었다는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주어진 시간 내에 다 못할까봐 너무 불안했다. 불안할수록 머리가 안 돌아가는 탓에 없는 시간을 쪼개 아침/점심/저녁 하루 세 번 명상도 했다.
매일 아침 일기장에 적은 확언
"조급해하지 말고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다 할 수 있어."
결국 모두 마감 안에 끝냈다. 걱정과 다르게 결과물도 다 좋았다. 불안도가 높은 나는 어려운 과제를 맡으면 기대감보다는 '못 해내면 어쩌지?'라는 자기 불신과 불안을 먼저 느낀다. 왜 항상 망할 걱정부터 하는지, 이런 성격이 평생 싫었다.
신기하게도 바로 그 못난 성격 덕분에 나는 항상 마감을 지킨다. 프리워커 주간보고도, 뉴스레터도, 한달 회고도 시작한 이후로 단 한번도 펑크낸 적이 없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탁월하게 잘할 자신은 없어도 기어이 해낼 자신은 있다.
이 사람한테 맡기면 200%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100% 이상은 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나다.
고마워 불안아.
네 덕분에 나는 나를 믿을 수 있게 되었어.
🌊 다시 운전 할 수 있을까?
진짜 운전이 뭐라고 이렇게 무서울까. 9월이지만 여전히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서 뚜벅이로 강의를 다녀왔다. 덥고 무겁고 힘들어서 화가 났다. 5년 전에는 운전해서 경기도에 있는 회사 연수원도 다녀오고 고속도로도 잘만 탔는데 어느날 갑자기 두려워져서 그만뒀다.
머릿속으로는 금방 다시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하려니 용기가 안 난다.
그냥 택시타고 다녀도 되지 뭐. 내년에 서울역 근처 아파트로 이사갈 수도 있잖아. 그럼 진짜 운전할 필요 없어. 지방 강연도 문제 없는걸.
vs
운전 그게 뭐라고 덥고 추운 날 이 고생을 해. 핑계 대지 말고 그냥 해라 좀!
🌊 다시 인풋을 늘려야 해
한동안 정신없이 번역 작업하고 콘텐츠 만드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너무 많아진 것. 9월은 인풋을 다시 늘려야겠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크리에이티브 점프> 연체하지 말고 읽자. 선샤이닝 독서모임도 재미있게 다녀오고 모임책인 <먼저 온 미래> 이번주까지 완독하자.
가수나 배우들이 갑자기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유학을 떠나거나 휴식기를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기분이 뭔지 알 것 같다. 있는 걸 전부 꺼내써서 바닥이 드러난 기분, 요즘 그런 기분이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은 시대'라는 우스갯소리에 나는 차마 동의하지 못하겠다.
제대로 쓰려면 쓰는 것보다 더 많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아마 거의 모든 작가, 번역가, 창작자들은 쓰기 위해 쓰는 것보다 더 많이 읽는 다독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