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단단 입니다.
구독자님 혹시 가수 송소희의 <Not a Dream> 공연 영상을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지난주에 이 영상을 처음 보고 냅다 꺅! 소리를 지를 만큼 좋아서 곧바로 송소희님의 팬이 되어 하루 종일 영상을 찾아봤답니다.
그러다 눈에 띄는 댓글을 봤어요. 송소희님 목소리를 칭찬하는 댓글이었어요. "판소리를 오래 한 사람들은 목소리가 탁해지던데 송소희는 여전히 미성이라 좋다." 오 그렇군, 생각하고 지나가려는데, 그 아래 이런 댓글이 있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은 비교 없이는 칭찬을 못 하나?" 이 역시 오 그렇군, 하고 넘겼어요. 그 후로 비슷한 댓글과 반응을 여러 번 봤어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비교를 너무 심하게 해와서, 반대 급부로 '비교하지 않기'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건 아닐까 하고요. 마치 미니 스커트 유행 다음에 미디 스커트가 아닌 롱 스커트가 유행하는 것처럼, 극단은 또 다른 극단과 공명하니까요.
그런데 구독자님, 비교가 정말 그렇게 나쁜 걸까요?
우리는 비교 '덕'을 볼 때도 많습니다. 물건을 살 때, 여러 제품을 비교해 가며 고른 덕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 수 있고, 옆자리 친구와 나의 다른 점을 비교하며 나만의 고유한 매력을 알아차리기도 하죠. 게다가 사실, 비교는 인류를 지구의 지배종으로 만들어 준 고마운 생존 전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비교'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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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은 비교에서
시작됩니다.
심리학과 뇌과학에서는 '자아'라는 개념이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설명해요. 갓난아기는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지 못해요. 거울을 보면서도 거울 속 존재가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지 못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울 속 존재'와 '옆에 있는 타인'을 비교할 수 있게 돼요. 거울 속 존재는 내가 팔을 올리면 따라서 올리지만, 옆 사람은 그렇지 않죠. 이런 반복적인 비교를 통해 아기는 깨닫게 됩니다. "아, 거울 속 얘는 나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와 다른 존재구나!" 이렇게 비교를 통해 우리는 처음으로 '자아'라는 개념을 갖추게 됩니다.
우리 뇌에는 '거울 뉴런'이라는 신경 세포가 있어요. 타인의 행동을 관찰할 때 거울 뉴런은 마치 직접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활성화됩니다. 우리의 뇌가 태생적으로 '비교'를 위해 설계되었다는 강력한 증거죠.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저 사람과 내가 같은가, 다른가'를 비교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회적 학습을 합니다. 비교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우리 두뇌에 내장된 기본 세팅 값인 셈입니다.
비교가 없다면, 우리는 나만의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인식할 수도 없어요. 자신의 능력이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교'가 필수적인데요. 예를 들어, 내가 수영을 잘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냥 혼자 헤엄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다른 사람의 수영 실력과 비교해야 내 실력을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사회적 비교 이론'에서 비교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적 욕구라고 말해요. 우리는 비교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판단하고, 정체성을 구축하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거죠.
비교 덕분에 우리가 각자의 고유한 나다움을 찾을 수 있다니! 뇌과학과 심리학 공부를 하며 가장 재미있었던 배움이었어요.
언어학에서도 비교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개념과 언어를 만들어낸 밑바탕이라고 주장해요. '길다'는 '짧다'와 비교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고, '빠르다'는 '느리다'가 있어야 의미가 있죠. '밝다'와 '어둡다', '무겁다'와 '가볍다'도 마찬가지고요. 즉, 비교란 인간이 사고를 하는 기본 매커니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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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비교는 우리가 자아를 형성하고,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고, 개념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예요. 그래서 비교를 완전히 하지 않으려고 하면 사고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비교가 아니라 비교하는 방식이예요. 비교를 강요하고 서열화했던 그동안의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이지, 비교 자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고 방식인 거죠.
이걸 알기 전, 저는 나다움이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어요. 비교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애쓰다 보니, 누군가를 레퍼런스로 삼고 따라 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기준점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내 안에 고립된 느낌이었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 하지 않고서는 창작이라는 걸 하기 어려워요. 나만의 창작을 하려고 세상에 있는 좋은 것들 다 피해가면, 남들은 만들지도 않는 이상한 걸 만들게 돼요.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대체로 비슷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비슷하기 때문이죠. 뭔가를 안 따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따라 하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따라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뭔가를 따라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거예요. 누구나 존경하는 선배들을 따라 하면서 성장해요. 따라 하는 건, 창작의 기본입니다. 우리는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어요."
이 말이 저에게는 정말 큰 용기가 되었어요. 그전에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게 될까 봐, 모방하게 될까 봐 겁이 났어요.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그들의 레퍼런스를 찾아보는 게 잘못된 행동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래야했던 거죠. 부러워하고, 질투도 해보고, 저 사람은 어떻게 성장했는지 찾아보면서 나와 비교하며 따라 해야 했던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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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비교하는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요가 수업에서 가끔 혼자 이상한 동작을 하고 있을 때가 있어요. 눈을 감은 채, 옆 사람을 보지 않고 그냥 제 느낌대로 동작을 할 때인데요. 그럴 때 선생님이 나지막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회원님~ 옆에 분 보고 따라 하세요." 그제야 아차 싶어 옆 회원님을 보고, 나와 동작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며 재빨리 자세를 고칩니다.
대학생 때, 공부를 잘하던 친구에게 어쩜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이해하고 암기하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자신은 연역적 학습이 아닌 귀납적 학습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새로 배운 개념을 다른 개념들과 비교하면서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비슷한지 찾는다는 거죠. 이게 새로운 개념의 속성을 하나하나 정의하는 것보다 빠르니까요.
나다움을 알아갈 때, 새로운 배움을 시작할 때는 일단 타인과 비교하고, 기존 배움과 비교하며 시작하는 것이 쉽고 빠릅니다. 쉽고 빠른 게 늘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쉽고 빠른 것 자체가 아니라 쉽고 빠른 것에만 기대려는 마음입니다.
쉽고 빠른 것들은 죄가 없습니다. 비교도 마찬가지예요. 비교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항상 비교만 하려고 드는 태도가 문제인 거죠. 시작은 비교부터 해야 합니다. 내가 남들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비슷한지 알아야 내가 어떤 독특함과 차별점을 가졌는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새로운 분야에 들어설 때는, 적절한 비교 대상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롤모델, 이 말이 부담스럽다면 레퍼런스부터 찾아야죠. 간혹 독창적인 길을 가겠다고 레퍼런스를 아예 안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은 독창적인 길이 아닌 독선적인 길을 가게 됩니다. 우리가 나답게 살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세상과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나다워지는 길의 끝에 세상과의 불화가 있다면 나다움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비교하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나는 무조건 남들과 달라야 해'라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도 하지 않는 이상한 동작을 하고, 이상한 글을 쓰고, 이상한 생각을 하게 돼요.
자꾸만 타인과 비교하는 나를 탓하게 될 때가 있지 않나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고 싶은데, 남과 비교하는 내가 잘못된 것 같아서 움츠러든다면, 그런 나를 다정하게 껴안아 주세요. 남과 비교하는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인간다운 사고 행위를 하는 중이에요.
우리는 적극적으로 남과 나를 비교하고, 배우고, 따라하고, 부러워해야 합니다. 그래야 결국 나다운 길을 찾을 수 있어요.
4년 전, 책 <매일매일 채소롭게>의 프롤로그에 쓴 문장을 소개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완벽하게 옳고 완벽하게 무해하고 완벽하게 아름답기 위해 나를 잃고 싶지 않다. 나답게 조금씩 천천히. 이리도 가 보고 저리도 가 보면서 나다운 일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꿈꾸는 채소로운 일상, 채소로운 매일매일이다."
- 책 <매일매일 채소롭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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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3/11
프리워커 주간보고
이제 보고할 상사가 없어서 여러분께 보고합니다. 지난 일주일간 경험하고 배운 것을 일기 형식으로 씁니다.
🌊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했어?
[3/7] 3년간의 리추얼 회고록 작성 시작 [3/11] 원고 편집본 교정지 피드백. N번째 교정이지만, 다행히 아직 토는 나오지 않는다.
🌊 주말은 주말답게
프리하게 일하는 사람일수록 '경계'가 필요하다. 요즘 나의 슬로건은 <주말은 주말답게>이다.
평일에는 7시 기상, 9시 업무 시작, 18시 퇴근이 원칙이다. 점심 약속보다는 저녁 약속을 잡는다. 점심 약속을 잡으면 하루가 다 가는 기분이랄까.
주말에는 되도록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10분 구몬 일본어, 1시간 영어 번역 공부만 한다.
이렇게 경계를 엄격하게 설정하고 나니까, 리듬감이 훨씬 좋아졌다. 주말에는 편안하게 쉬고, 평일에는 휴식을 원동력으로 삼아 힘 있게 집중한다. 책이 나오고 바빠져도 일과 일상 사이 균형 있는 리듬을 이어 나가고 싶다.
🌊 나는 나의 레퍼런스
회사 밖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니, 레퍼런스가 없어졌다. 회사 안에서는 다양한 동료들이 자연스레 레퍼런스가 되어 주었는데, 회사 밖으로 나오니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나눌 비슷한 성향의 동료를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혼자 일하는 사람 중에 자기 이야기를 공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특히, 나와 같은 내향인들은 더더욱 공개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레퍼런스도, 동료도 찾기 어렵다는 아쉬움은 잠시, 오히려 이게 나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겠다. 적어도 나는 '굳이 이렇게까지...?' 공유를 하는 사람이니까, 나를 레퍼런스로 삼아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동료로 여겨주는 분들이 어딘가에 계시지 않을까?
거기 계...시죠? 손 한번 흔들어 주세요!!
🌊 개구리는 꼭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할까?
내 삶을 겉으로만 보면 딱 '우물 안 개구리'다. 일단 집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친절한 듯 보이지만 의외로 냉정하고, 남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데다가, 남에게 관심도 별로 없다.
요즘이야 이런 성격도 그럭저럭 인정해 주는 분위기지만, 터놓고 말해보자면 그냥 눈치도 사회성도 없다는 거다. 극 E인 내 동생은 어릴 때 내가 '대인기피증'인 줄 알았다고 한다. 🤣 (인.정.) 이런 성격으로 10년 넘게 회사에 다닌 게, 정말 너무 대견해서 상이라도 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래도 일말의 사회적 지능은 있기에 본성을 숨기고 어떻게든 사회생활을 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니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모임에도 나가보고, 네트워킹이란 것도 해보고, 회식도 꾹 참았다.
특히나 회사 밖 홀로서기를 하려면, 억지로 나를 우물 밖으로 끌어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지난 7개월 간의 시도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모든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는 것.
우물 안에서 이 우물을 더 깊게, 더 정교하게, 더 견고하게 지키는 개구리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꼭 모든 개구리가 우물을 떠나야 할까?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두문불출 문단 활동 없이 글만 쓰는데? (물론, 그는 엄청난 대작가라서 가능한 일이다.)
알고 보면 우물 안에서 조용히 잘 사는 개구리가 엄청 많은데, 사람들한테 안 알려져서 우리가 모르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바로 그 개구리의 표본이 내가 되어야겠다! 우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내 우물을 지키며 즐겁게 일하고 잘만 사는 개구리가 여기 있다는 걸 보여주자.
우물 안 개구리 친구들, 희망을 잃지 마세요. 누구도 우리를 우물 밖으로 밀어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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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에서도 개구리의 하루는 바쁘답니다.
요즘 덴비 그릇에 밥 차려먹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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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러움, 질투와 같은 욕망을 소중하게 여겨요. 솔직한 나의 맨 마음 같아서요. 그 마음을 제대로 다독여주지 않고 무작정 어른스러워지라고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누군가가 부러울 수도 있고, 질투가 나서 미울 수도 있죠. 그럴 때는 솔직한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 감정을 충분히 인정하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천천히 들여다본 후, 나로서 살아갈 준비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구독자님도 부럽고, 질투 나는 누군가가 있나요?
그런 마음이 들 때, 스스로를 어떻게 다독여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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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레터 질문
엉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드러낸 나의 처음은
든든하고 단단하게 나를 이끌어주는 등대, 나침반, 중심축이 되어줄 거예요.
구독자님에게 엉성한 처음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나의 엉성한 처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나요?
📫 보내주신 답변들
떠오르는 '처음'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지금 처음을 헤쳐나가는 분도 계실 테고, 과거의 처음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 텐데요. 나에게는 어떤 '처음'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튜브 댓글 달았던 구독자입니다. 제 댓글을 좋아해주셔서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네요ㅎㅎ말씀 드렸듯이 저는 이민자로 살면서 이 곳에서 학교에 다니기 위해 몇년째 준비 중이랍니다. 시험 보고 준비하는 과정을 최대한 여과 없이 시작부터 블로그에 공개해 왔어요. 스스로에게 남기는 기록이기도 했지만 저와 유사한 길을 갈 뒤에 올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몇 년의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실 들어가기 쉬운 학교가 아니라 합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기록을 남겨 두었던 시간들은 후회하지 않아요, 누군가에겐 또 도움이 되겠죠..?ㅎㅎ 다음 주에 한국에 들어가는데 단단님 책은 아마도 제가 다시 출국한 뒤에 나올 것 같아 아쉽네요ㅠㅠ 이북도 나온다면 우선 이북으로 보며 다음 한국행을 기다려보겠습니다. 언젠가 시기가 맞는다면 오프라인 모임도 참가해보고 싶네요😊😊
단단: 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만나요.
나의 엉성한 처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나요? 어떤 모습부터 보여주면 좋을까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보통 다른 사람들에겐 정돈되고 수준 있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미숙한 시기를 가리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저는 지금은 뛰어난 사람들의 처음, 엉성한 시기가 더 궁금하거든요 지금의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멋진 나의 초창기를 남겨두는 건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용기가 되지 않을까요.
단단: 그럼요! 저도 그렇게 믿고 미숙한 지금을 드러내고 있어요. 모든 사람에게 공감받을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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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레터를 읽으며 어떤 생각이 떠올랐나요?
여러분의 소중한 답장을 기다릴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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