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야하는 이유
글 | 수즈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서서히 여행을 갈 기회가 생긴다.
여행을 이렇게 간절히 기다렸던 적이 있었을까?
바쁜 일정에 짬을 내지 못하던 중 드디어 비행기를 예약했다.
3년 만의 해외여행. 준비가 만만치 않다. 코로나로 인해 현지 사정이 많이 달라졌는데 최신 정보는 없고, 그새 감도 많이 떨어졌다.
하긴 여행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재미 있는 거지 뭐.
찬 바람으로 성큼 다가온 겨울이 쓸쓸하지 않고 설렘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날까?
새로운 시야의 발견
첫 타국 여행으로 느낀 문화의 차이는 새로운 시야를 깨웠다.
처음 느꼈던 놀라움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차이’
뉴욕에서는 일단 어떠한 몸의 형태라도 원하는 옷으로 자유롭게 개성을 발현하고,
그 누구도 함부로 특별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100년이 넘은 보스턴 지하철은 노후되어 있지만 장애인의 이용 문화가 훨씬 잘 되어있다. 장애인이 탑승하면 지하철은 당연히 멈추고 기관사가 나와 장애인의 탑승을 돕는다. 무엇보다 장애인은 당당히 본인의 권리를 누리고 양해를 따로 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움이 필요할 때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도움을 주고 싶지만 주저하는 상황은 없다. 그곳은 요청과 도움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조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연대’는 비단 개개인의 의식과 문화뿐 아니라 시스템적으로도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생각보다 더러운 도시 환경에 놀랐지만 자유를 수호하고 인권을 중시하던 역사가 도시 곳곳의 분위기에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민폐’에 대한 개념이 달랐다. 민폐는 절대로 끼치면 안 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의도치 않는 민폐를 끼쳤을 때 서로가 기꺼이 수용해 주는 ‘관용’의 모습이 중요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놀 수 있고 어른들은 기꺼이 눈치 주지 않고 아이들의 놀이를 인정해 준다. 차로는 무질서했지만 양보에는 관대했다.
무질서 속의 질서는 참 신선했다.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의 관찰이지만 일련의 상황을 경험하며 새롭게 든 생각을 정리한다. 타인에 대한 시선은 타인을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나의 도움이 필요할 때 사용해야 한다는 것, 피치 못한 민폐에 대한 관용이 얼마나 서로의 긴장을 풀어 주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에티켓이란 비단 규칙을 지키는 것을 넘어 유연함과 여유를 통해 사람 사이의 ‘관용’을 넓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낯선 곳에서의 관찰과 사유는 연결, 연결되어 새로운 영감과 시각을 일깨워 준다.
계획 불발의 묘미
여행은 생각보다 힘들다.
최대한 계획을 하고 가지만 예정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태반이다.
모든 것을 계획 하에 두려고 하면 여행은 그때부터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세상은 절대 내 생각대로만 움직여주지 않아.
오히려 통제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어떤 상황도 기꺼이 대처하고 즐길 줄 아는 마음이 세상살이에 참 도움 되는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여행 일정 중 일부는 특별한 계획 없이 발이 이끄는 데로 여행을 즐긴다.
책을 들고나가고, 멍을 때리고, 특별한 후기 없는 로컬 음식점을 기분에 따라 들어가 계획 없는 하루를 보낸다.
단, 여행에서 즉흥적인 하루를 보낼 땐 두 가지는 꼭 염두에 둔다.
아무것도 안 하지 않을 것, 어떤 선택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을 것.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오는 묘미가 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속상해하지 않고 새로 만나게 된 경험을 마음껏 즐기면 여행은 더 다채로워진다.
차곡차곡 쌓이는 취향
나는 건축물을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자연도 좋지만 유적지와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작품의 뒷이야기와 역사를 보는 것, 이국적인 분위기의 로컬 골목 사이사이를 좋아한다.
그 나라의 문화가 그대로 담겨있는 빈티지 제품을 좋아하고, 돌아올 때 지역의 풍경을 담은 작은 그림을 사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그림을 보며 기억을 떠올리면 그날의 풍경과 분위기가 생생히 기억난다.
취향을 발견하는 것은 꽤 유쾌한 일이다.
마치 작은 서랍에 내가 좋아하는 예쁜 것들을 하나씩 채워 가끔 꺼내보며 기분 전환을 하는 느낌이다.
취향을 많이 알았다고 생각해도 막상 여행을 가면 매번 또 새로운 취향을 발견한다.
세상엔 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게 많을까? 참 행복한 일이다.
여행은 너무 소중하다.
여행은 작았던 나의 세상에서 벗어나 큰 세상을 보게 한다.
세계가 얼마나 크고, 사람들은 어찌나 다채롭게 살아가는지...
각자의 에너지가 모여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체감하고 오게 될 것이다. 날씨 하나 예측할 수 없는 그 기간 동안 나는 또 얼마나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오게 될까?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야말로 영원히 희미해지지 않을 '설렘' 그 자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