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신다면?
안녕하세요 😊✨ 단단입니다. '일'에 대해 정형화된 생각이 있잖아요.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사람들과 정해진 방식으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해야 일한다고 말하죠.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그게 무슨 일하는 거야. 노는 거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놀이와 일은 어떻게 다를까요? 놀면서 돈 벌 수도 있고 일 하면서도 놀 수도 있고... 일과 놀이를 꼭 구분 지어야 할까요. <함께하는 독학클럽>은 일에 대한 다른 균형을 찾는 실험을 하고 있어요. 성장을 하면서 균형있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고 싶어요!) 성공도 성취도 좋지만 장 자크 상페의 책 제목처럼 인생은 어쩌면 단순한 균형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두구두구) 5.5년의 커리어를 돌아보며 프리워커 실험을 하고 있는 마케터 & 크리에이터 <앤가은>님을 만나서 일과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인터뷰 소식 만으로도 인스타그램이 들썩였던! 바로 그 인터뷰를 지금 바로 공개합니다 😊
인터뷰를 시작하며 이번 레터의 주제 <일을 놀이처럼 놀이를 일처럼>를 다시 떠올렸다. 진짜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다고 한다. 가은님의 일 기록을 보면서 '일하는 거 맞아? 즐기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활동으로 에세이와 영상을 만드는 가은님을 보면 '일하고 있는 거 아니야?' 싶기도 하다. 인터뷰를 하며 알았다. 애초에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었다. 경계가 흐릿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분명한 경계를 인지하기 때문에 두 세계에 모두 존재할 수 있었다. 두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방법을 만드는 사람.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할 줄 알고 균형을 잡아가는 사람. 인터뷰를 정리하며 앤가은의 나아감과 쉬어감 사이 탁월한 균형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옮겼습니다) 가은 | 제작팀으로 옮기고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 대표님이 '가은아, 해보니까 너는 콘텐츠 제작이 맞더라. 잘하더라.'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아... 결국에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면 남의 인정을 받을 수 있구나.' 자신을 믿으면 남의 인정도 받을 수 있는 거였는데, 외부의 말을 듣고 3년을 끌었던 거에요. 안 해본 거니까 잘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몰랐던 거죠.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믿었어요. 내가 당장 내일 '이거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가면 된다고, 거기서도 인정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순간이었어요. 스스로를 좀더 인정해주는 삶을 살자. 남의 인정에 중독되지 말자고요. 단단 | 워커와 크리에이터를 분리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일과 놀이로 나눌 수 있을까요? 가은 | 그렇게도 분류할 수 있고 남의 일을 해주고 돈을 버는 행위인지, 내 일을 하는지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남일이 내 일이 되면 좋은 거잖아요? 그 교집합이 커지면 커질수록 만족도가 커지고요. A = 남을 위해 내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활동 B = 나를 위해 내 시간을 쓰는 활동 단단 | 그 교집합이 커지는 게 일과 놀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거죠. 가은 | 계속 교집합을 찾고, 키워나가려고 하는 거죠. 단단 | 퇴근 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직장인, 프리랜서를 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쓴다고 해서 '자유롭게 일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유연 근무제를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한 달에 정해진 시간만 근무하면 되거든요. 오늘 6시간 일하고 내일 10시간 일하는 게 가능한 거죠. 코로나 이후 재택 근무로 공간의 제약도 크게 뛰어넘었고요. 그래서 이제는 '자유롭게 일한다'는 것이 다른 의미로 느껴져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는 게 '일하는 자유'라고요.
오늘도 비슷한 듯 다른 관점의 두 책을 소개합니다. 일을 놀이처럼 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가장 힘차게 YES! 를 외칠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봤어요. 단번에 <독립한 마케터 정혜윤>님이 떠오르더라고요. 올해 봄, 혜윤님의 책을 읽고 마음 깊숙이 눌러놓았던 용기가 꿈틀꿈틀 올라왔어요. 그 마음을 천천히 따라가며 작은 일을 차곡차곡 벌였어요. 뉴스레터를 발행한 것도 그 때 얻은 용기 덕분이었어요. 놀이도 일처럼 멋지게 해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는 <프로딴짓러 조재형>님이 생각났어요. 책을 읽기 전에는 일에서 얻지 못한 만족감을 딴짓에서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책을 읽다보니 재형님은 <딴짓과 일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거였어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한번 느꼈어요. 애초에 놀이와 일의 경계가 없는 사람들은 놀이에서도 일의 성과를 얻고 일에서도 놀이의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 그러면서도 일과 놀이의 경계를 명확하게 인지한다는 것을요. ![]() 『퇴사는 여행 』 정혜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자유가 주어진 시대는 없었다. 이런 시대에 일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경쟁력과 기회, 그리고 가능성을 맞은 것이다." 옵션이 많아지니 기회 비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일의 가능성 때문에 시간은 더 중요해졌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지금 하는 일이 어떤 형태든 의미 있지 않다면 우리는 변화를 원할 수밖에 없다." ![]() 『하우 투 딴짓』 조재형 " 언제부터일까. 이 세상에서 '나다움'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것은. 모두가 '나답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지금, 내가 말하려는 나다움을 다시 생각해본다. 왜 일을 잘하고 싶을까. 주어진 근무 시간만 지키고 월급만 밀리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왜 없는 시간을 쪼개서 나다운 일을 꿈꾸는 걸까. 누구나 인정받고 싶다. 그곳이 회사든 아니든, 내가 발을 딛고 선 무대라면 말이다. 어릴 적 부모님의 작은 칭찬에 행복했던 기억, 연인을 위해 기획한 이벤트가 성공해 행복했던 기억처럼 '인정'은 본능의 영역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춤을 추듯 일합니다. 자신만의 리듬이 있어요. 작가이자 뮤지션인 이랑님이 출연한 팟캐스트를 듣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일 잘하는 사람에게 물었어요. 일 잘하는 법이 뭐야? 하고요. 그랬더니 자신만의 리듬을 찾으면 되, 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일잘러들이 '리듬'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신체와 성향에 맞는 최적화된 동작과 방법을 찾게 되니까요. 그 동작이 무한히 반복되다 보면 '생각하지 않아도 움직이는' 단계에 이릅니다. 최적화된 움직임이 마치 춤과도 같아지는 것이죠. 몸을 사용하는 일도 그렇고, 머리나 마음을 사용하는 일도 예외 없이 그렇습니다. 뮤지션 이랑의 '신의 놀이'는 그 예술적인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이랑의 작품을 보면 언제나 반쯤 넋을 놓고 홀린 듯 보게 됩니다. 그는 어쩌며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나와 다른 것을 보고 듣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이랑의 <신의 놀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브런치에 글을 남겼습니다.
함께하는 독학클럽 뉴스레터를 시작한 이후로 2달 조금 넘게 일과 일상에 대해 인터뷰하고, 취재하고, 책과 영상을 보며 공부하고 있어요. 퇴근 후 시간을 쪼개어가며 뉴스레터를 일 처리하듯 해내고 있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인생을 더 즐기기 위해 시작해놓고 왜 이렇게 쫒기는 마음으로 하고 있는 거지? 꼭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이런 억울한 마음이 들 때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글 전문은 아래 링크를 눌러서 보실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반 친구들과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3 곱하기 0이 어떻게 0일 수가 있어? 네가 틀렸어! 3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아. 그대로 3인 거지." 친구들은 3 곱하기 0이 0이라고 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게 맞다면 세상은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세상이라니, 내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절망적일 리가 없다. 죽어라 소리 높여 박박 우겨댔고 결국 이 싸움의 주동자들은 담임 선생님을 찾아 교무실로 달려갔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선생님한테 자신들이 맞다며 소리를 높였다. 선생님은 우리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쩌지... 무엇이든 0은 곱하기를 하면 0이 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해볼까? 바구니에 사과가 3개가 있어, 그런데 0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서럽고 미웠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이 세상도 전부 원망스러웠다. 한참이 지나 울음을 그치고 하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3 곱하기 0은 0이다. 무엇이든 0을 곱하면 0이다.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그 뒤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중략) 그렇다. 3 곱하기 0은 절대 3이 될 수 없다. 그러나, 3이 바뀔 수는 있다. 좋아하는 일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3이 아니라 4, 5, 10, 20이 된다. 내보일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그저 재미있고, 알고 싶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서 계속 하다 보면 숫자는 점점 커진다. 그리고 비소로 어떤 기회를 만나게 되면 0이 1이 되고 2가 되고 3일 될 수가 있다. 그때 내가 가진 숫자가 여전히 3이라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3이나 9일 테지만, 0이 1이 될 때까지 시간을 쌓아가고 있었다면 40, 60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어린 내가 주저앉아 펑펑 눈물 쏟을 만큼 가혹하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가만히 세상은 지켜볼 뿐이다.
![]() 성장과 균형에 대해 하고 있는 고민, 새롭게 시도하는 일들, 도움받은 책이나 영화가 있다면 함독클럽에 알려주세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전할게요 😊📢 |
일상의 균형과 나다운 성장을 함께 이야기해요.